“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100위 그리고 카메라 밖에도 음악이 있고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아래 있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하는 무심함 때문에,  그들만의 잔치에 끼지 못할 때 주어지는 박탈감 때문에,  나는 괜히 혼자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래며 연말을 보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역시나 무심했었던, 박탈감을 안겨주던 대중이었던 적이 있었기에 또 괜히 혼자 지난 날을 반성하며 연말을 보냈다.

이제는 보이는 그 ‘선’ 근처에 모여든 턱걸이 하는 모습들…
어떻해서든지 철봉을 붙잡고 턱걸이를 하는 것 처럼, 팔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서 위로 오르려고 안간힘을 내고 있는 간절한 목소리들이, 힘을 내는 얼굴들이 보이는데

누가 감히, 당신들이 뭐라고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재단하려 드는건지…

말도 안 되는 이 프레임에서 모두 다 같은 방법으로 경쟁하고 있으니, ‘우리도 경쟁을 하고 순위에 올라야 한다.’며 정직하지 않은 방법을 궁리하고 함께 하자 독려하는 것이, 나는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앉은 뱅이는 도와주겠다는 예수께 ‘나를 저 연못에 넣어주세요.’라고 부탁헸지만, 예수께서는 대뜸 ‘너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데스다 연못가에도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이 존재했다. 진짜 치료가 필요한 병이 심한 자들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기에 몸을 움직이기가 수월했던 사람들이 베데스다 연못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뛰어들어가 고침을 받았다. 이렇게 프레임이 정해져 있으니 앉은뱅이가 바라는 (혹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나를 들어 연못가에 넣어 주는 것’이었겠으나, 예수께서 보시기에 이건 말도 안되는 부탁이었던게 분명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너의 상상 너머의 일인데 고작 내게 이런 하찮은 부탁을 하다니!!!’ 하시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아주 쿨하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하시며 앉은뱅이를 낮게 하셨으니 말이다.

엉뚱하게도 나는 분노와 반성으로 연말을 보내면서 내내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나도 ‘너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이런 초월적인 발상이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더 엉뚱한 상상도 함께 하면서…

사족…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는 신학적으로 아주 엉뚱한 해석이 아닙니다. 혹 저의 정신세계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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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am…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내 마음의 발은 동동거리고
누군가의 마음이 지옥을 경험할 때
내 마음은 가시밭길 한 가운데를 걷고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의 그 모든 마음이
내 눈 앞을 흐리게 하고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데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의 그 모든 마음에
흐려진 눈 앞을 훔쳐내고
먹먹해진 가슴에 큰 숨을 불어넣어도
나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내 발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고
내 손은 한 뼘도 뻗을 수 없어서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한 걸음에 달려가
내 두 손으로 등을 한껏 앉아주고 싶은데
나는 달려갈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고
고작 침대에 누어 밤새 눈 앞을 훔쳐내고
가슴에 큰 숨만 불어넣는다.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으나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기에
바라지 않는 모습일텐데
나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2006/04/23 11:12

한국사회..
나이다움이 지켜져야 하는 사회..
다들 약간의 차이를 보여도 그 나이 또래들과 같은 경로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만약 그 나이 또래에 거쳐야 할 일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당사자는 당연히 초조해져야 하고, 주변의 시선은 이런 그들에게 불안감을 더해 준다.
한국나이로 따지면 나, 서른을 넘어버렸다.

서른을 넘은 내 또래, 그들의 경로…
학교는 거의 대부분 졸업을 했고, 직장을 다니고 있고, 특정 분야에서 특정한 일을 하고 있고, 절반 이상이 결혼을 했고, 이제 슬슬 첫 아이를 가지기 시작했을 시기다.

미국나이로 이제 서른이 된 나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고, 푼돈에 불과한 돈을 받고 파트타임을 하나 하고 있고, 하고 싶은 특정분야는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결혼은 언제 할지,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없으며, 이런 내가 아이가 있다면 이건 더 이상한 상황인거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않은, 심지어는 방학에 방문하는 것 조차 점점 껴려지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나이다움과 아주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기에 한국에 들어가는 게 점점 스트레스가 되가고 있다.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사는 게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이건 아주 죄스러운 기분마저 들게 한다. 시간이 갈 수록..

그럼에도 미국에 있기를 고집하고 있는 건, 나이다움을 강요하지 않는 이곳의 분위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진로를 바꾸고 공부를 새로 하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미국 생활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난 이곳의 이런 분위기를 맘껏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이런 자유로움이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와 슬쩍 불안해지기도 한다.
가령 내가 어른의 범주에 속한건지 아니면 여전히 아이인지 확신을 못한다거나 하는 등…

인간은 어딘 가에 소속되었을 때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아주 기본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조차 어느 항목이 나를 위한 것인지 확신을 못하고 있다..

이거 불안한 무소속 아닌가?!

10년도 더 지났건만 나의 불안한 무소속은 현재 진행형…

mission statement

“회사나 조직, 또는 개인의 핵심가치나 목표를 적은 글”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 핵심 가치나 그 일의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는 철학을 가지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지랄맞은 성격탓에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면 다 짚어내야 하고 시간 걸려도 고민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을 먼저 완벽하게 해두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쉽게 넘어가질 못 한다.

종종 내게 진로 상담하는 후배들에게 늘 하던 질문이 ‘그래서 그거 왜 하고 싶은데? 그거 할 수 있게 되고나면 그 다음은?’ 열정적으로 자기 계획을 이야기하다가도 이 질문을 반복적으로 듣고 나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의기소침해진다. 모라 할말이 없어서…
사실 나는 일부러 의기소침해지길 바라고 그런 질문을 했었다. 이상하고 못된(?!) 선배라고 해도 난 그 친구들이 의기소침해지고 난 후 스스로 이유와 목적, 먹고 사는 직업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보다 삶을 관통하는 변함없는 철학을 먼저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최근에 다시 불붙은 나의 무모함과 추진력으로 친구와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 일을 위한 mission statement를 고민했고 내 개인적 mission statement가 이 일을 준비함에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의 지경을 넓혀 남의 지경을 넒히는데 도움을 주자.’

우리의 계획대로 이 일의 미래가 항상 핑크빛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mission statement가 변함없이 지켜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내게는 재미있는 일일테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