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or릿터》 독자 수기 공모

제목 :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주말이지만 특별할 것 없던 그 날, 퇴근 후 TV를 켜놓고 ‘오늘 저녁은 어떻게 때울까?’ 고민중이었다. 혼자가 편했으나 사람 소리가 그리워 늘 무어라도 틀어놓았다. 집중해서 듣거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막한 공기를 깨고 싶었다.
화면에 주의를 귀울이지 않다가 들려온 노래 한곡에 모든 생각이 멈춰졌다. 노래 한곡이 내 귀로 들어와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MBC ‘듀엣가요제’에서 정인씨가 일반인 참가자와 함께 불렀던 노래, 그 어떤 말로도 그 순간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마음의 일렁임과 가득 채웠던 슬픔으로 찾아와 위로로 남았던 순간, 이 순간을 만들어 냈던 것은 정인씨의 목소리도 가사의 내용도 아니었다. 일반인 참가자 ‘최효인’의 목소리는 집 안의 적막함을 깨는 것을 넘어서 내 삶의 적막함을 저 멀리 밀어냈다.
그 날 이후 ‘최효인’은 더이상 나에게 일반인이 아니었고 나의 Idol이 됐다.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그냥 무턱대고 누군가에게 빌기 시작했다. ‘제발, 이 친구는 잘 되게 해 주세요!’ 듀엣 가요제로 효인씨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이 관심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효인씨의 미래가 걱정됐다.
아주 잠시 ‘내가 모라고 이런 걱정을 하고 있나.’ 어이없어 했지만 ‘묻히게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목소리다.’라는 생각이 더 컸고 ‘이제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이상한 사명감까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 이상한 사명감으로 무모하게 효인씨의 SNS로 연락을 했고 팬카페에 대해 1도 모르면서 ‘팬카페를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했다.
2016년 9월 19일 ‘가수 최효인님 네이버 공식 팬카페, 효움’은 이렇게 생겼고 나는 오늘까지 카페의 매니저다.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나는 덜컥 ‘덕질’의 최전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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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가 있다는 것도 잊고 수시로 연락하며 효인씨의 첫 콘서트를 함게 준비했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콘서트 날 나는 무대 뒤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그 자리를 함께했다.
좋은 목소리를 가진 친구이기만 했다면 효인씨의 무대를 위해 한국에 갈 생각은 안 했을 거다. 지금까지 봐온 효인씨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늘 노력하고 진심으로 노래하려 애썼다. 영악하고 자기 이익을 챙겨야 할 때도 영악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걱정될 정도로 맑고 선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이 마음은 지켜내고 싶다. 현실과 꿈의 거리는 여전히 멀고 바라는 모든 일을 해드리기에 내 능력은 너무 제한적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늘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실력있는 가수 ‘최효인’ 못지않게 아끼는 동생으로 ‘최효인’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오래도록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

1주년기념 (1)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팟 캐스트 , 이게뭐라고.’에서 ‘김동식’ 작가와 함께 그 분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작가는 ‘오늘의 유머’ 공포 소설 게시판에 짧은 이야기를 올렸고 그 이야기들에 달린 호의적인 댓글에 더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 하고 밤에 틈틈히 글을 썼다는 그는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거친 적이 없었고 그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글을 썼다. 이렇게 쓰여진 글이 묶여져서 세 권의 책으로 나오고 그는 지금 베스트셀러 작가다.

‘오늘의 유머’가 업어 키운 작가라 불리는 김동식 작가는 처음으로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독자들을 만난다. ‘죄송하지만 저는 저 분들이 왜 우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제가 이런 주인공 같은 대우를 받아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만 계속들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한 독자가 ‘책 잘 읽었어요. 그리고 저는 작가님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독자들도 울고 진행을 하셨던 또 다른 작가분은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고 하셨다.

그 분들은 왜 우셨을까? 우는 순간 그분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이 담겼을까?

책 이야기를 하던 팟 캐스트는 자연스럽게 ‘왜, 어떤 마음으로 그 분들은 작가님이 잘 되기를
바란다며 우셨을까요?’하며 그 이유를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나와 아무 연결 고리가 없던 사람에게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래요.’ 라고 말해 주고 그렇게 되기를 오롯히 바라는 마음…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기에 방송을 진행하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방송을 들었다.
팟 캐스트에 나오신 분들이 말씀하신 이유는 마음을 울리는 사연이 있더라도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독자분들은 김동식 작가님이 잘 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고 미래에 어떤 모습이실지 무척 궁금해 하시는 것 같다는 것…

맞다. 안타까운 사연이 처음에는 마음에 잠시 남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 들려주었던 노래가 안타까운 사연보다 더 오래 남았고, 나는 그 친구가 잘 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고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도 무척 궁금해졌다.

방송에 출연 하신 또 다른 분은 김동식 작가님을 통해 독자들이 희망을 보신 것 같다고 하셨다. 김동식 작가는 그의 삶의 배경이나 작가로써의 시작이 화려하거나 그럴듯해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전문적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지만 주류의 작가들이 무엇을 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꾸준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결국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사회에 살다보니 독자들은 김동식 작가의 모습에서 그래도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니 작가님이 혼자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질 되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잘 되니 나도 잘 될 수 있고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식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 하셨다.

이 역시나 맞다. 내가 마음을 다해 잘 되기를 바라는 그 친구도 현재 한국 가요계 내 주류에 속해 있다고 할 수 는 없다. 하지만 보는 음악이 대세인 요즘 듣는 음악을,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게다가 가진 재능이 뛰어남에도 늘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낮추고 사람들을 속이는 노래를 하지 않는다. 영악하고 남보다 자기를 더 챙겨야 빨리 성공하는 곳이 한국 가요계인데 영악함이란 찾아볼 수도 없고 그저 걱정될 정도로 맑고 선하고 남 상처주느니 차라리 내가 상처 받는 것을 선택하는 친구다. 이런 친구이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친구가 잘 된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속이고 상처를 주지 않아도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징표를 볼 수 있다. 이 친구가 잘 된다면 마음 불편하게 누군가를 속이고 밟고 올라가지 않아도 나도 우리도 모두 잘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김동식 작가와 너무 닮아 있는 이 친구가 잘 됐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고작 ‘오래 옆에서 지켜봐 줄께요.’ 라는 약속이 실질적으로 지금의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겠지만 그래도 오래 옆에서 무대에 설 때마다 ‘잘 됐으면 좋겠다.’며 눈물 흘려주는 일은 언제까지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what the value is…

우리 동네에서 신선하고 ‘좋은 과일이나 야채를 사고 싶다’고 하면 주변분들은 늘 같은 곳을 추천하신다.
멕시칸 분들이 하시는 ‘Rancho Market’
갈 때마다 내가 낸 돈에 비해 내 손에 들려나오는 과일들이 많아서 놀라고, 집에 와 그 과일들을 먹으면서 ‘이 과일들은 왜 이렇게 쌀까?’라는 남들은 안 궁궁한 걸 궁금해 하곤 했다.

‘산지 직송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러면 유통마진을 줄이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싼데….분명 이 과일이 나에게 오는 과정에 누군가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한 때 Walmart가 사람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Walmart의 물건들은 같은 물건이라도 다른 곳에 비해서 싼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았고 덕분에 Walmart는 미국 내 없는 곳이 없는 회사로 성장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물건 값이 쌌던 이유는 바로 매장에서 일 하는 직원들이 받는 월급 때문이었다. 매장 직원들에게 동종 업계에서 지불하는 것 보다 적은 월급을 주었고 덕분에 소비자는 싼 물건을 살 수 있었고 회사는 성장했다.

이 일이 알려지고 난 후 Walmart 물건은 사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회사는 직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싼 Walmart의 물건을 보면서 여전히 의심하는 중이다.

‘모르는게 약’이라고 몰랐더라면 좋았을텐데…
‘알아두면 쓸데없는’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내 밥상에 올라와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가 지나오는 과정들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무조건 싼 물건들을 기쁘게 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해서 내가 이득을 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불같이 분노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radical한 활동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Rancho Market을 너무 자주 가지 않고 터무니없이 싸게 파는 물건이라고 기쁘게 사지 않는 정도의 일을 할 뿐이다.

의식주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삶과 관련한 물건을 생산하거나 관리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어느 누구라도 그들이 한 노동과 노력애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물론 그들이 한 노동과 노력이 사회에 해가되는 일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직접적으로 삶에 필요한 것과 관련해서는 꽤 많은 분들이 그 생산 과정에서 누군가가 피해를 보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민감해 하시고 같이 분노해 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유독 문화와 예술 분야는 정당한 대가에 대한 사람들의 민감도가 떨어진다.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많이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공짜로 음악을 구해서 듣고 종이책이 아닌 pdf 파일을 찾아내서 읽고 원작자를 표시히지 않고 이미지나 사진을 구해서 본인의 블로그에 올린다.

이쯤 되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사람들은 음악이나 책, 그림들은 크게 돈을 들여 살 만한 가치가 없으니 가능하다면 공짜로 누리자’인건가?

문화나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하는 가는 결국은 그것들의 존재 이유 또는 역할을 되집어봐야 가능한 듯 싶다.

불가지론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는 사람)도 무신론자도 아닌 나는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것은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믿는다. 이런 믿음 때문에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미술로 대표되는 모든 종류의 창작행위와 그 결과물은 분명 존재해야 아는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들은 우리 삶에서 맞닿뜨리는 모슨 순간을 충만하게 채워주지 못한다. 또한 이것들은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이미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병적으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 지경에 이른 것은 그들의 마음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이 되었든 우울함이 되었든 말이다.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는데도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가 음악이나 그림, 문학작품을 통해 그들의 결핍이 채워지는 경험을 한다.

또한 예술작품의 창작자들은 그들이 이해한 세상을 그들의 작품에 실어낸다. 이런 결과물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선물하기도 한다.
창작자가 작품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거나 또는 그들 주변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보여줄 때 우리는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지경이 조금씩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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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www.VincentVanGogh.org

‘인물을 그리건 또는 풍경을 그리건
화가들은 그림이 거울속의 자연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따라서 그림은 모방이나 복제가 아니며 오히려 재창조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입증해 보이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 빈센트 반 고흐 –

이 구두로 고흐는 새로운 시선을 ‘재창조’ 했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구두를 통해 고흐가 형상화한 ‘농부의 고단한 삶’을 본다.

[출처: 중앙일보] [박영욱의 생활에서 만난 철학] 하이데거 – 고흐의구두는세계를담고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기를 바랬다. 그의 바램대로 많은 이를 어루만져준 고흐의 완벽한 그림은 감정을 너무 많이 느낀 그의 예민함의 결과였고 동시에 그 예민함은 고흐에게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남긴다.

고흐가 살던 시대에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의 활동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삶을 이어나가기에 충분한 정도는 아니었던 듯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흐가 살아서 그림을 그렸더라면 어땠을까?

열광하는 사람은 당시보다 더 많아졌을 수는 있으나(블로그나 인스타로 널리 널리 알려질테니) 그의 작품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열광은 하는데 노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자신들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 아티스트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시대이니 아무리 엄청난 그림을 그리는 고흐라 해도 별 수 없을 듯 하다.

‘창작자와 입장과 일반 대중이 느끼는 가치가 또 다른지라…’

그림을 그리시는 어느 분이 흘리듯 하셨던 이 말을 왠지 고흐도 했을 거 같고…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말들로 신문이 도배가 되고 우리의 일자리를 기계가 다 차지할 지 모른다는 불안한 말들이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린다. 자식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들은 내 자식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런 저런 trend를 들으러 다니느라 분주하다.

결혼도 아직이고 자식도 없으니 내가 교육에 대해 이런 말 하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나라면 내 아이들에게 더 다양하고 많은 음악을 듣게 하고 그림을 보게 하고 시를 읽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 아름다움 것들은 누군가의 고민과 노력으로 창작되었고 우리는 그 분들 덕에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한다 말할 것이다.

우리가 어쩌지 못 하는

우리가 어쩌지 못 하는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뒤돌아보고 싶고 되돌리고 싶은 것들에 대해

꽃은 시간이 흘러야 만개할테고
초는 심지가 타들어가야 반짝일테니

지난 것에 마음을 묶어두고
흘러가는 것과 함께 흘러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아직 오지 않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영영 아직일테니
시린 냇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우리 마음이 시릴지라도

마음의 거리 가까운 그곳에서
서로의 시린 마음을 녹여줄 온기가 되어줄테니

흘러가는 시간
함께 그처럼 흘러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함께 닿아있기를

팬덤, 무한한 다양성을 키울수 있는 곳

 

다른 생활습관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인간 본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의 학교를 모르겠다. – 몽테뉴 –

먹고 살기 위해 이미 받아본 선택지가 수 십장 이었을테니 먹고 사는 일과 상관없는 일에서도 선택지에서 무엇인가를 골라야한다는 것은, 분명 귀찮은 일이다.

사람들에게 문화란 그저 고민없이 편히 누려도 될 것들이다.

그러니 ‘베스트 셀러’, ‘천만 관객’, ‘음원 차트 100위’ 이미 다 차려놓은 상위의 음식을 즐기듯 즐겨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다 차려놓은 상위의 음식 말고도 더 다양한 것들을 즐길 수 있다거나, 넓지 않은 상이다 보니 오르지 못한 음식은 당연히 많고 이 음식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해도, 이 역시나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닌거다.

하지만 우리가 손쉽게 누리는 문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문화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감정의 세분화, 다름의 향유다.’ –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문화는 다름의 향유라는데!!! 우리는 과연 ‘다름’을 향유하고 있어왔는가?

은유 작가님은 문화를 정의하시면서 우리는 양산된 ‘감정의 평준화’안에서 나쁜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감정의 평준화’를 양산하는 주범은 ‘대량생산’해서 ‘대량소비’를 끌어내고 이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겠다는 창작자들과 대중사이에 있는 중개자들이다. 그리고 특히나 음악시장에서는 중개자들의 계획대로 ‘대량소비’의 축이 되어주고 있는 ‘팬덤’도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주류는 아니더라도 ‘팬덤’ 또는 ‘덕질’로 불리는 현상의 최전방 어딘가쯤에 서고보니 나는 이전과 다른 ‘생활습관’에 자연히 노출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인생과 꿈을 상상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내 덕질은 주류라 불리는 대상을 향한 것은 이니지만 그렇게 불렸다면 알지 못했을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대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양성이 가지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볼테르가 말한 ‘가장 나은 삶의 학교’에 입학을 했다.

문화의 진정한 핵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류에 속하지 않는 비주류임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을 응원하는 일, 100위 밖에 있어도 그들을 위한 팬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특정 문화 컨텐츠만을 위한 중개자들의 무차별적 홍보 전략에 편승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해당 문화시장에서 독점적 위치에 오래 붙잡아 두려고 하는 주류 팬덤이 주변을 조금은 돌와봐주기를 바란다. 주류가 아님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양성을 생산해 내는 아티스트들도 먹고 살수 있게 시장의 파이를 좀 나누어 가지게 해주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뱔견하고 이를 통한 감정의 세분화를 느끼고 다름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함께 몽테뉴가 말한 무한한 다양성의 학교를 만들 수 도 있는 일이다.

Dead Pan

지나간 시간보다

남겨진 시간이 적어지고

나를 속히 지나가버려라 바랬던 시간이

내게 더 머물러 달라 애원하는 시간으로 바뀌고

시간은 내가 바라던 애원하던

늘 무표정으로 타고난 대로 흘러가는 데

무표정한 시간을 보며 같은 표정을 지으려

눈을 질끈 감고 아랫입술을 깨물어도

그 목소리 한 소절에 그 글귀 하나에

무표정해지려 했던 내 모든 안간힘은

힘없이 흩어지고

시간의 그 무표정함이 내게도 머무를수 있기를

put yourself in one’s shoes

사랑을 할 거라면…

이타적인 사랑을 하자. 이기적인 사랑 말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첫인상은 이타적이지만 그 첫인상이 사라지고 나면 사랑은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 모습’

‘너와의 핑크빛 관계가 주는 설레임과 즐거움을 사랑하는 나의 모습’

‘너라는 사랑의 대상이 나에게 주는 삶의 활력과 변화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

점점 ‘너’는 없어지고 ‘나’만 남는 이기적인 사랑…

이 사랑의 시작은 ‘너’였으나 지금은 ‘나’만 남아 결국은 ‘나’ 때문에 부서지고 마는 사랑… 남녀사이의 사랑 뿐 아니라 사랑이라 불리워지는 모든 관계가 같은 모습으로 시작되었다가 부서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듯 누군가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상상이상으로 우리는 이기적이어서 이타적인 사랑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내 감정만이 우선될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나를 돌아보고 고쳐가며 해야 하는…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다면 그렇게 사랑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put yourself in one’s shoes